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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왕의 연가



*서론

왕의 연가는 주로 아가서를 인용하고 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하는 대화인데 그것을 그리스도와 그 백성들을 상징적으로 연결 시킨다. 다시 말해서 아가서를 성경에 포함 시킨 이유는 솔로몬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연가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연애할 때 하는 말, 사랑의 노래를 연가라고 한다. 사랑은 상대가 있고, 짝사랑이 있다. 아5:2~8에 보면 사랑하는 자가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안에서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 침상에 잠 들었으므로 어찌 일어날 수 있느냐. 이 모습을 가지고 우리는 짝사랑이라고 한다. 하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는데 다른 한 사람은 애원을 한다. ‘문 좀 열어 줘. 일어나 문 열어 줘’ 결국 기다리다가 가 버렸다. 그러나 때 늦게 누워있던 사람들이 깨닫는 날이 있는가? 깨닫고 문을 열고 그분을 찾았으나 이미 떠나 가버렸다. 아5:2~8의 기록에 보면 수 많은 사람을 찾아 다니면서 내 사랑하는 그이를 보았느냐 애원하는 모습이 어쩌면 오늘날 그리스도를 향한 인간들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된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은 짝사랑 일지 모른다. 왜 그런가? 이론은 있지만 마음은 있지 않다. 만일 문을 연다고 하면 마음의 문인가, 이론의 문인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있는 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론은 있는데 생각은 아직도 밖에 있다. 당신께서는 우리가 당신이 있는 곳에 있기를 원하신다. 


예루살렘에 가야 하는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성경에는 의인의 마음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또한 시137:5~6에 보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라고 말한다. 그 말은 생각이 주로 예루살렘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 인가? 또 하나 말씀을 드린다. 눅17:20~21에 보면 하늘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디에 먼저 있어야 하는가? 마음에 있는 사람은 나중에 주님 오실 때 실제의 영원한 땅에 있게 된다. 이것이 마음이다. 


마6:21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 주님이 계신 곳에 내 마음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마6:21은 잘 설명하고 있다. 보물이 있어야 마음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 예루살렘, 하늘 성소, 주님이 계신 곳으로 우리 마음이 들어가려고 하면 그리스도가 우리 보물이 되어야 한다. 그분이 객관적인 존재로 되어 있으면 우리 마음이 그리로 들어갈 수 없다. 계3:20에 보면 문을 열어라 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 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마음의 문이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마음의 문을 열라고 요구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이론은 있는데 마음은 거기에 집착되어 있지 않다. 허탄한 생각 속에 빠져 있다. 이런 상태에서 하늘 왕이 사랑하는 대상의 문열어 달라는 연가이다. 다른말로 하면 짝사랑의 상태 속에서 나타나는 한 표현을 이야기한다. 



*일요일 _ 나눠지지 않는 삶

부부는 나눠질 수가 없다. 왜 나눠질 수 없는가? 한번 생각해보자. 이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같이 살면서도 마음이 나눠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나눠지면 지속할 수 있는 가정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나눠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눠지지 않는 삶, 이것은 굉장한 이야기다. 


창2:7에 보면 “땅의 흙으로” 창조 하시고 부부를 만드셨는데, 나누어지지 않는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이것이 부부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다. 이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아담은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아담을 돕는 아내는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 상태는 나눠질 수가 없다. 생각해보자. 보화가 있는 곳에 끊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떨어지지 않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전13:8) 그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거기에 집착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어려운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가? 살 수 있다. 그분이 내 유일한 보화라고 깨달아 질 때는 그렇게 살 수 있다. 그분이 내 유일한 보화라고 생각되지 않을 때는 아마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래서 아내와 남편, 남편과 아내의 상징을 통해 나타나는 본질은 그리스도와 교회, 교회와 그리스도이다. 


이 설명을 엡5:22~33에서 다시 볼 수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 아내와 남편, 바울은 정확하게 설명한다. 가끔 집사람에게 우스개 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여보, 내가 먼저 죽고 당신은 나보다 하루라도 늦게 죽어야해’ 이것은 솔직한 내 심정이다. 누구 없이는 안된다는 이야긴가? 내 아내 없이는 내가 안된다는 생각에 농담삼아 나오는 이야기긴 하지만 아내 없이는 안된다 하는 생각이다. 이것을 우리는 어디에 접목 시켜야 할까? 우리는 그리스도 없이는 못 산다. 순간도 그분을 떠나서는 안된다.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하는 말을 여기에 쓴다. 



*월요일 _ 아가서의 사랑

아1:2에 보면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라는 말씀이 있다. 아름답고 매력을 느껴야 한다. 만나가 박식이 되면 안된다. 만나가 날마다 달아야 한다. 만나는 날마다 새로워야 한다. 그런데 세상이 좋으면 만나는 박식이 되고 싫어진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가슴에 영원해야 한다. 왜 우리는 매일 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매일 매일 그분의 것을 느끼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날마다 우리의 사랑을 우리 가슴에 새롭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아가서의 사랑에 대한 의미를 가졌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화요일 _ 사랑의 지식

지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론적 지식이고 또 하나는 체험적 지식이다. 여기 아가서에 나타난 말씀을 지식이라고 하면 무슨 지식 쯤 될까? 주문진에 가다보면 막국수 집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잘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 집 앞에 차가 가득하다. 거기는 주문진 에서도 좀 떨어진 곳인데 왠 차들인가 했더니 서울에서 막국수를 먹으로 온 차들이라고 한다. 맛을 본 사람은 맛을 느낀다. 우리도 이 사랑이라고 하는 지식을 체험해야 더 느낄 수 있다. 이 사랑이 없이는 못 살 만큼 느껴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형을 당한다. 그러자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여보시오, 오늘도 당신에게 기회는 있소. 만일 지금이라도 그리스도를 포기 한다고 하면 살 수 있소.’ 그러자 사형수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그분을 왜 버리라고 합니까? 나는 못 버립니다. 나는 그분을 버릴 수가 없소.’ 결국 사랑 때문에 그는 무엇을 당하게 되었는가?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이 사람 뿐만이 아니다. 수 많은 사람들, 허스나 제롬 같은 사람들이 노래 하면서 죽음을 당했다. 왜 그런가? 그 사랑은 죽음도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가서 가운데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신앙이 자꾸 변질되어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 보다도 다른 사랑이 내 마음 가운데 충동적으로 일으키기 때문에 그리스도라는 사랑을 변질 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은 그리스도에 대한 일편단심 이어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 사랑의 지식을 가져야 한다. 사랑의 지식은 무엇인가? 사랑의 지식은 체험적 지식이다. 맛도 모르는, 글자만 아는 지식이 아니다. 우리는 맛을 아는 지식, 이 지식이 필요하다. 



*수요일 _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랑

어떤 남자가 여자와 약속을 해 놓고 외국에 유학을 갔다고 한다. 유학을 가서 일년이 되도 안오고, 이년이 되도 오지 않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이봐, 남자 믿지 말어. 그 사람은 가버린 사람이야’ 그 때마다 여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내게 그분이 약속했습니다. 꼭 돌아 온다고 약속을 했어요.’ 이 여자가 얼마나 이뻤는지, 매력을 느꼈는지 모르지만 주변의 수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중매가 들어오면서 ‘그 말을 믿지 말어. 남자 믿을 필요가 없어’ 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여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기다림이 칠년이나 계속 되었다. 그리고 남자는 돌아왔다. 


오늘 사랑은 뭐할 줄 아는 것인가? 기다리는 것이다. 더딜 지라도 기다리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라.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기다려 왔을 지 모른다. 사25:9에 보면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하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인내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목요일 _ 하나님의 선물을 보호함

선물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인가? 객관적인 다른 개념에서 생각해보자. 보호한다. 계3:11에 보면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선물이 있는데, 그 선물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의 구원이다. 그것을 어떻게 하라고 계3:11은 말씀하고 계시는가? 아무나 빼앗지 못하다록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이 전부 다 우리의 마음을 변질하게 만드는 상황 들이다. 어떤 분이 ‘장로님, 벧엘 기도회가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 30년이 넘었다고 대답을 하니 그분이 놀란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 상황이 바뀌니까 나도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기다려야 한다. 


저는 이런 기도를 드린다. ‘주님, 이 기별을 당신이 주시지 않았습니까? 영원히, 영원히 기도회를 보존해 주세요.’ 기도 가운데 일부분이긴 하지만 매 아침마다 영원히 이 기도회를 보존해 달라고 기도드린다. 왜 그런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보호의 전제적인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것을 굳게 잡아야 한다. 


교과책에 보면 레20:7의 말씀을 기록해 놓았는데 거기에 거룩 이라는 말씀이 있다. 거룩한 은혜를 우리가 입었다. 보통으로 입혀준 옷이 아니다. 영원히. 영원히 보존되어야 한다. 히2:3에는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가 받은 것이 엄청난다. 우리가 받은 이 놀라운 은혜는 어떤 명예로도, 인간의 애정으로도, 인간의 물질로도 대체할 수 없다. 영원한 것이다. 받은 것을 영원히 보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간단히 정리한다.


  1. 2019’2기 07과 가족 연합의 비결

  2. 2019’2기 06과 왕의 연가

  3. 2019’2기 05과 가족을 위한 조언

  4. 2019’2기 04과 혼자일 때

  5. 2019’2기 03과 변화에 대비함

  6. 2019’2기 01과 생애의 리듬

  7. 2019’1기 13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8. 2019’1기 12과 바벨론에 임한 심판

  9. 2019’1기 11과 일곱 재앙

  10. 2019’1기 10과 하나님의 영원한 복음

  11. 2019’1기 09과 사탄과 그의 동맹군

  12. 2019’1기 08과 패배한 원수 사탄

  13. 2019’1기 07과 일곱 나팔

  14. 2019’1기 05과 일곱 인

  15. 2019’1기 04과 어린 양이 합당하시도다

  16. 2019’1기 03과 일곱 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기별

  17. 2019’1기 02과 촛대 사이에서

  18. 2018’4기 13과 연합의 최종적인 회복

  19. 2018’4기 12과 교회의 조직과 연합

  20. 2018’4기 11과 예배를 통한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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