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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과 가족을 위한 조언


*서론
가족을 위한 조언은 무엇인가? 전도지를 보니까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은 어떻게 하는지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번 교과 제목에도 보면 가족을 위한 조언이다. 좋은 말, 도와 주는 말, 중심을 잃고 하는 말은 서로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이다. 남편은 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아내는 남편을 즐겁게 해주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즐겁게 해 준다. 즐거우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중심이 되는 조언을 해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대하든지, 아내가 남편을 대하든지, 부모가 자식을 대하든지, 자식이 부모를 대하든지 간에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것은 무엇인가? 가정과 건강 영문 375p 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의 입장에 계시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어보라” 우리가 우리의 기분대로, 우리의 감정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말, 좋은 권면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입장에 계셨다면 저 영혼을 어떻게 대하셨을까? 주님이 대하신 것처럼 대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을 반드시 물어보라는 이야기다. 

왜 남편이 아내를 원망하고, 아내가 남편을 원망하는가? 자식은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는 자식을 원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욕망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자기라는 개념을 세워놓고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원망한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누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하는가? 엄청난 사랑을 가지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이 무엇인지 계산하고 아내를 보고, 남편을 보고, 자식을 보고, 부모를 봐야 한다. 이것이 참된 가정을 이루는 동시에 가족을 위한 조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그렇지 않다. 세상은 어떤 가정을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하는가? 주님이 좋아하는 가정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되는 가정을 행복한 가정이라고 한다. 전부 자아 속에 만족하려고 한다. 가족을 위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가? 교회를 나오지 않는 남자가 있다고 하자. 만일 내가 여자라면 그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싫지만 우리 주님은 그를 기다린다. 나는 싫다. 저런 남자 싫다. 그런데 주님은 그 영혼을 지금 기다린다 라고 할 때 내 마음은 내 기분과 감정으로 남편을 보던 시야가 달라져야 한다. 주님이 그를 기다리신다 이런 시각으로 가족을 서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부모에 대한 생각도 같다. 그리스도께서 보는 상태에서 생각을 한다면 뭐가 나올까? 내 부모를 위해서, 내 남편을 위해서, 내 아내를 위해서, 내 자식을 위해서 이런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랑의 주님이 우리 가정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내가 판단해서는 안된다. 또한 모든 사람이 전도의 대상인가? 왜 모든 사람이 전도의 대상인가? 내가 보기엔 옳지 않지만 저 영혼을 오늘 주님께서는 학수고대하신다. 저 영혼을 회개 하기를 깊이 기다리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혼에게 전도할 마음이 생긴다. ‘아무리 말해 봤자 그가 듣기는 하는가?’ 이렇게 인간의 판단과 계산으로 본다면 우리가 상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단히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혼을 기다리신다는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앞서 말씀드린 가정과 건강 영문 375p 의 말씀처럼 누가 사람들을 대할 때 주께서 내 입장에 계셨다면 저를 어떻게 대하셨을까 하는 것을 반드시 물어보자.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라고 믿어진다. 


*일요일 _ 적법한 여인을 사모하라
적법한 여인은 무엇인가? 적법한 여인을 사모하라는 말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결혼때 부터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결혼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자기 욕망대로 결혼을 하려고 한다. 돕는 배필의 기준은 무엇인가? 돕는 배필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 것이 좋을까? 내가 필요한 대로 도와 주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많은 젊은 사람들이 사람을 선택할 때 인물이 잘났는지, 많이 배웠는지, 부자인지 하는 조건을 본다. 만일 우리가 젊은이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골라야 할까? 저 여인이 과연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저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핵심된 생활인지, 그것을 우리가 살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젊은 이들에게만 표현된 말은 아니다. 가끔 사람들이 쉽게 교회를 포기하는 것을 본다. 왜 교회를 포기하는가? 물론 가정이 어려워 포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현실에 전혀 길이 없어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자기 만족에 대한 결여로 교회를 포기한다. 다시 말해서 불만족이다.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옳지 않은 사람을 보아도 내가 ‘옳지 않다’ 라고 판단을 내리면 안된다. 내가 보기엔 옳지 않지만 주님께서 기다리는 영혼이다 그러면 교회를 잘 포기할 수 없다. 또한 쉽게 사람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무슨 법으로 인간을 보지 말아야 하는가? 인간의 잣대로 인간을 보지 말자. 

적법하다 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이것을 남자와 여자 관계 없이 적법한 사람을 누구라고 보면 좋을까? 철저하다, 기도 생활을 많이 한다, 그것도 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하나 더 추가 한다면 주님이 저 영혼을 기다리시고 계시는지, 저 영혼이 가장 어깃장 나는 인생을 간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저를 기다리고 사랑하고 계신다고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보는 상태를 그리스도 안에서 적법한 상태를 찾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적법한 여인들 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 젊은 이들이 결혼을 할 때 신앙은 먼저 계산 하자는 말이 되겠고, 그 다음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구든지 상대를 하는 사람도 무엇을 찾자는 것인가? 적법한 사람을 찾자. 그는 내가 보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보는 사람인가? 주님께서 보시는 영혼을 찾아야 한다.

일요일 소지 가운데 사모하라 라는 말을 쓴 것을 보아서는 반려자를 고르라는 의미로 보겠지만 이것만 가지고 설명이 되는 것 보다는 전체적인 의미로 적법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은 누구도 사랑하는가? 내가 보기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저를 기다리신다 이런 면에서 적법한 현실을 찾자.


*월요일 _ 아버지들에게 들려주는 권면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한다. 자녀가 없으면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면 자녀가 있을 때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정신을 가져야 하는가? 아버지의 특권 의식을 가지면 안된다.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대행자라고 하는 현실을 느껴야 한다. 그리스도의 대행자라고 하는 현실을 느끼면 잘못된 자녀도 기다리는가? 무책임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화잇부인의 기록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열두 제자들이 중구난방이다. 어떤 사람은 우편 좌편에 세워 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다른 욕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았던 것이다. 또한 그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인간이 볼 때도 옳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엇을 했다고 하는 말이 없다. 오히려 주야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 했다고 한다. 뚜렷하게 옳은 방향을 가지 않아도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 했다고 한다. 어디에서 만 당신 자신을 위해서 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절박한 현실에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할 겨를이 없었고 당신 자신을 위해 기도 했다는 말이 시대의 소망에 나온다. 그 전에는 전부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 했다고 한다. 

말씀이 좀 빗나간 것 같죠? 잘 들어보자. 내게 주신 선물의 아버지라고 하면 어떤 정신을 가져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생각해보자. 좀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꽤 많은 목회자들의 아이들이 가버렸다.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제일 처음 그 아이들을 낳아서 교회 안에서 자라나면 믿음이 자라나야 하지 않은가. 목회자의 집에서 태어나 믿음으로 자란 아이가 자라나자 마자 반항심이 생겨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또한 삼육학교 교수를 하면서 자기 아이는 나가서 술 먹고 담배 피고, 왜 이러는가? 왜 붙들지 못하는가? 인간의 욕망대로 자녀를 교육하려고 하면 붙들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 의무로 해서는 안된다. 사랑의 감동을 주어야 한다. 

아버지들에게 주는 권면은 어떤 권면을 받아야 하는가? 아버지가 되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심어지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감정으로 하다 보면 때론 아이에게 욕도 하게 되고 때리기도 한다. 강압적으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상을 심으면 감동을 받는다. 밑에 참고 가운데 좋은 말씀이 있다. “경건한 아버지들은 참을성 있게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영감의 교훈에 보면 재림 신도의 가정 224p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엄하면서도 사랑 깊은 감화력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외손녀가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얘, 이게 무슨 상처니?’ 라고 묻자 자기 아버지에게 맞은 상처라고 한다. 내 마음 가운데 왜 이렇게 아이에게 상처를 줄 정도로 때렸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외손녀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 나를 사랑해서 이렇게 하신 거예요.’ 매도 사랑으로 깨달아지면 감동을 받는다. 아버지의 자격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기 마음에 심지 않으면 아버지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무엇을 들려 주어야 하는가? 어떤 권면을 해 주어야 할까? 그리스도의 정신을 품으라는 말이다. 

어떤 목사님에게 술먹고 다니는 망나니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술을 먹고 어둑 어둑, 밤중에 자기 집을 더듬어 찾아 갔는데 문을 열고 보니 울음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의 울음 소리다. 왜 울음 소리가 들리는지 가만히 들어보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운다. ‘하나님, 내 아들을 살려 주세요’ 목을 놓고 운다. 그러자 술 주정꾼 아들이 아버지의 울음 소리에, 아들을 살려 달라며 목을 놓고 우는 소리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문을 박차고 들어가 아버지의 목을 안고 이렇게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은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역시 목사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다. 아버지에게 들려주는 권면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간직해야 한다. 그것이 아버지들에게 들려줄 가장 소중한 것들이다. 


*화요일 _ 사랑의 징계
예전에 가끔 이런 소리를 들었다. 아들이 잘못하면 아들 손바닥 내 놓고, 자기 손바닥도 내 놓고, 아들이 잘못한 것은 내가 잘못해서 이렇다 라는 의미로 둘 다 때린다고 한다. 너는 잘못하고 나는 옳았다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아들을 세워놓고 자기 다리를 회초리로 때리면서 ‘네가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잘못 되었기 때문에 이렇다’ 라고 하니까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 제가 안 그럴게요’ 라고 하면서 방향을 바꿨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어떠한가? 항상 나는 옳고 아이들은 잘못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징계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 징계를 누가 먼저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은가? 자신이 먼저 받아야 한다. 내가 잘못 가르쳤다고 하는 사실을 자녀가 보는 앞에서 부모가 자신을 징계하면 다는 아니겠지만 감동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사랑의 징계라고 하는 말을 잘못한 사람에게만 징계라는 목적을 갖지 말고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나타냈다고 하면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수요일 _ 움막에서 살면 더 좋은가?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로 이해하고 서로가 사랑하고 서로가 불쌍히 여기면 그 가정은 어디서도 행복한가? 움막 에서도 행복하다. 그래서 이런 의미로 이야기 한 것 같다. 그래서 세상의 의견을 가지면 끊임없이 불만족 하지만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채우면 아내도 남편에게 만족하고, 남편도 아내에게 만족한다. 그리스도가 마음에 담겨 졌을 때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가지고 신앙을 잘 하는 사람이 돈이 없어 불만족 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가? 신앙 하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불만족한 사람이 없다. 오늘 그리스도의 곁을 떠나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만족한다. 움막에 살아도 좋을 수 있는 건 그리스도로 만족 했기 때문이다. 


*목요일 _ 참으로 부유한 아내
부요한 아내만 있겠는가? 부요한 남편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요한 사람은 누구쯤 될까? 그리스도로만 만족하면 된다. 이 세상의 것은 끝도 없이 목마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목마르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하는가? 돈이 없어서 자살을 하는가? 아니다. 불만족 하기 때문이다. 돈에 만족을 찾으려고 하면 끝없이 목마르다. 세상에 대한 만족을 찾으려고 하면 아무리 맞춰도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비교하면 목마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만족한 인생을 찾아야 한다. 세상에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다 간다. 우리는 왜 그리스도로 만족해야 할까? 그분은 내게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만족하자. 그리스도로 부유한 아내, 그리스도로 부요한 남편, 이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참고에 보면 “폭넓은 재능을 모든 여성에게 기대해서도 안 되며 남편이 아내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라고 말한다. 다 똑같아야 한다. 부인이 남편에게 그런 기대를 해서도 안된다. 

이 세상에 행복은 무엇인가? 얼마 전에도 이야기 했었는데 어떤 집에 비싸고 좋은 도자기가 있는데 그 집 며느리가 청소를 하다가 깨트려 버렸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오셔서 ‘얘야, 내가 잘못했다. 내가 거기 두는게 아닌데 내가 잘못해서 니가 깨트렸구나’ 도자기는 며느리가 깼는데 시아버지가 잘못해서 깼다고 하니까 어찌할 도리가없다. 또 남편이 오더니 ‘내가 먼저 청소를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었다’ 전부 자기에게 돌린다. 

남편은 아내에게 돌려서는 안된다. 아내는 남편에게 돌려서도 안된다.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가? 잘못은 내게 다 돌려야 한다. 이것은 남편에게만 적용 해서도, 아내에게만 적용 해서도 안된다.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 질 줄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다. 저도 그런 말이 쉽게 나온다. ‘연합회가 왜 이러지? 병원이 왜 이렇지?’ 그런데 다니엘은 무슨 기도를 드렸는지 아는가? 이스라엘의 부패를 보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부패했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거기에 포함 시켰다. 그것이 하나님의 종들이 가지고 있는 자세이다. 자기를 포함 시켜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잘못된 것을 가지고 자꾸 교인들에게 돌리고, 가정에서는 남편은 아내에게 돌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돌리려고 한다. 그런 것들을 전부 다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내가 잘못하였으므로’ 라고 하면 그 가정에는 원망이 없어진다. 이렇게 되는 가정이 이루어 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1. 2019’2기 07과 가족 연합의 비결

  2. 2019’2기 06과 왕의 연가

  3. 2019’2기 05과 가족을 위한 조언

  4. 2019’2기 04과 혼자일 때

  5. 2019’2기 03과 변화에 대비함

  6. 2019’2기 01과 생애의 리듬

  7. 2019’1기 13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8. 2019’1기 12과 바벨론에 임한 심판

  9. 2019’1기 11과 일곱 재앙

  10. 2019’1기 10과 하나님의 영원한 복음

  11. 2019’1기 09과 사탄과 그의 동맹군

  12. 2019’1기 08과 패배한 원수 사탄

  13. 2019’1기 07과 일곱 나팔

  14. 2019’1기 05과 일곱 인

  15. 2019’1기 04과 어린 양이 합당하시도다

  16. 2019’1기 03과 일곱 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기별

  17. 2019’1기 02과 촛대 사이에서

  18. 2018’4기 13과 연합의 최종적인 회복

  19. 2018’4기 12과 교회의 조직과 연합

  20. 2018’4기 11과 예배를 통한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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