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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혼자일



*서론

혼자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가? 혼자가 좋을 때는 주님과 함께 일 때 이다. 우리가 인격적인 상태가 아니라, 생각하는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대상으로 간직 할 때 그 혼자는 행복한 혼자이다. 이번 교과를 보면 역시 결혼이 관계가 되는데 그 교과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간접을 통해서 직접이 느껴지지 않으면 간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혹 간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이 세상에 인간은 전부 간접 존재이다. 이 간접이 복이 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직접적인 그분이 느껴져야만 간접이 복이 된다. 단순히 우리의 시선이 그 존재 자들에게 꽃힌다고 하면 우리는 전부 잃어 버릴 수도 있다. 이 세상에 결혼 제도라고 하든지, 친구를 사귀든지, 이 모든 것들은 직접적인 그분이 보여지면 결혼은 행복한 결혼이요 그분을 직접 볼 수 있는 친구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행복한 친구이다. 그분의 실체가 보여지지 않는 결혼은 그 결혼 자체가 저주가 될 수 있다. 그분의 실체가 우리에게 느껴지지 않는 친구는 그 친구 자체가 저주 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교과를 통해서 생각하는 것은 혼자 일 때 행복한 혼자가 있고, 행복하지 않은 혼자도 있다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혼자는 무엇인가? 주인이 없는 혼자는 고아이다. 영적 고아다. 인격적으로는 혼자이지만 주인이 내게 있다고 하면 그 혼자는 행복하다. 무엇이 유일하기 때문인가? 이 세상의 것을 유일한 것으로 하지 않고 오직 한 분을 유일하게 내 반려자로 모시고 살 때 이 땅에 있는 인격적인 혼자는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하나 생각해보자. 간접을 이야기했는데 먼저 혼자가 아니라고 하는 상태를 우리는 어디서부터 나누는가? 창1:26~27에 보면 어떤 말씀이 있는가?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남자와 여자는 누구를 가르키는 남자와 여자인가? 그리스도를 가르키는 남자와 여자다. 그러면 남자도 누구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가? 남자도 사랑의 대상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여자도 역시 똑같다. 사랑의 대상이 없으면 살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도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본질은 대상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 대상들을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가르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43:21, 25에 보면 내가 나를 위하여 라는 말이 있다. 나를 위해서 너를 창조했다. 그러면 나라고 하는 것을 무엇으로 보면 되겠는가? 사랑을 위해서 사랑이 창조되었다.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 되었다. 또한 사43:25에 보면 구해 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은 사랑의 대상이다. 사랑은 혼자 일 수가 없다. 사랑은 반드시 대상이 있다. 사54:5은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역시 하나님도 대상이 있으셨다 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고 그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간접을 만드셨는데, 부부,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를 그렇게 만드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말씀 하실 때 혼자라는 개념을 말한다. 



*일요일 _ 친교

친교가 무엇인가? 서로 사랑하는 대상을 두고 말할 때 그것을 친교라고 한다. 이 친교 에는 부부도 포함한다. 부부에서 부터 친구까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참된 친교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만일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결혼을 해야 한다면 그 결혼의 대상은 친교인가? 친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아내, 혹은 남편, 서로 가장 가까운 한 몸처럼 친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대상이 누구여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적 친교를 하려고 하고, 그리스도를 내 가장 친한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 이 땅의 친교가 있다고 하면 누구 쯤 되 것 같은가? 


오늘날 이 세상은 결혼을 기호로 한다. 기호적 결혼을 하는 것이다. 사실 결혼은 그런게 아니다.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그리스도를 가장 사랑할 수 있는 그 처지에 유지될 수 있도록 그런 대상자를 찾아야 한다. 오늘날 결혼이라는 것은 전부 순간적인 기호로 결혼하기 때문에 결혼은 지옥이 되어 버린다. 결혼의 대상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과 친교 하면 그로 인해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소멸되어 버린다. 그래서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4:9~10에 보면 둘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가 넘어지면 하나는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한다. 결혼은 기호가 아니라 돕는 배필이다. 결혼은 기호의 상대가 아니다. 물론 기호의 상대라고 하는 것도 하늘이 주는 어떤 법칙에서 진행 되기는 하지만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결혼은 서로 뭐하는 것인가?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한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한 사람이 일으켜 주는 배필, 이것을 전4:9~10은 이렇게 언급한 것 같다. 내 사랑하는 친구도 내가 실망하고 좌절될 때, 나를 일으켜 줄 수 있는 친구, 아내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똑같은 의미를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친교라고 한다. 



*월요일 _ 미혼의 삶

결혼 안하는 사람을 미혼이라고 한다. 미혼의 삶, 이것을 누구의 실례를 들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 바울이다. 바울은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나처럼 홀로 라는 이야기를 했다. 바울은 왜 홀로 라는 말을 썼을까? 사실 바울은 산헤드린 회원 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했을 것이다. 아마 사별을 했든지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는데, 그는 왜 나처럼 홀로 라는 이야기를 한 것인가? 생각해보자. 가정적인 문제에 있어 생각을 해야 할 문제가 있을 것 같다.


복음을 전하려면 때론 무엇이 거추장스럽게 나타나는가? 내 아내, 내 자식, 내 남편, 이것이 때론 상당히 거추장스럽게 앞에 장애가 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군사로 지내는 사람은 어디 억매이지 말아야 한다.(딤후2:3~4) 미혼의 삶은 무슨 목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미혼의 목적이 있다면 오로지 주님만 위해서 사는  그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다른 사랑의 대상이 없이 일편단심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참고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는 선교지역에서 봉사할 기회가 두 번 있었는데, 그때 잠시도 주저함 없이 대답했죠.” 가정이 있는 기혼자였다면 자신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들도 포함된 문제이므로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렸을 것이다.” 단출하면 주님께서 내게 부르실 때 단순하게 응할 수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 같다. 영감의 교훈에 있는 교회증언 5권, 370p를 각자 좀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화요일 _ 결혼 관계가 끝날 때

말2:16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여기 이혼이라는 말을 썼는데 바울은 때로 무슨 말을 했는가? 고전7:15에 보면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고 말한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와 연결 되는 것에 장애가 되는 것을 용납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이 용납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인것 같다. 그래서 결혼에 관계가 끝날 때 이혼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두 번째 생각해보자. 믿음이 없는 아내가 있고, 믿음이 없는 남편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왜 유지해야 할까? 우리는 영혼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영혼을 붙들고 끝까지 주님의 대열에 서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저 영혼을 얼마나 사랑 하시는 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에 이성을 잃으면 안된다. 구별할 줄 아는 이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 관계에서 이혼이라고 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수요일 _ 사별과 외로움

사57:1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가끔 이 죽음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가? 죽음이 왔을 때 위로 받을 수 있는가? 어떤가? 우리는 죽음이 올 때 위로 받을 수 있다. 죽음이 이르러 왔을 때 후회없이 가족을 잃어 버릴 수 있는 상황은 언제인가? 가려뽑은 기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한 분이 남편을 잃고 흐느껴 운다. 그 때 엘렌 지 화잇이 하는 말이 있다. 울지 마시오, 이 사람은 기별을 받고 인 받고 죽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을 잃어버릴 때가 올 것이라고 한다면 언제 후회 없는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가? 준비 시켜야 한다. 요즘 우리 교회의 한 형제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 그리고 그 가족들을 볼 때마다 이야기를 한다. 꼭 그 형제의 기억 속에 그리스도가 순간도 떠나지 않게 하라고.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순간은 죽음 직전이다. 죽음 직전에 가지고 있는 그 순간은 대단히 중요하다. 죽음을 위해 준비되게 하는 것은 사별이 외롭지 않다고 하는 사실도 여기서 생각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목요일 _ 영적인 독신

영적인 독신이 무엇인가? 영적이라고 하는 말을 봐서는 영적인 사람인데도 혼자라는 말인가? 독신은 어떤 말일까? 아마 이 세상에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아내도, 남편도 없었을 때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러면 그가 독신인가?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 하와가 왜 범죄하였는가? 하와가 실체의 사랑의 대상으로 정해주신 그분을 놓친 것 처럼, 그 상징으로 보여준 남편 없이 외로이 섰다. 그 때 하와는 범죄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영적으로 살아가는 독신은 그리스도만 있는 독신이다. 이런 독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좀 더 생각을 하면 좋겠다. 


이번 교과를 혼자, 홀로 라는 말을 썼다. 서론 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홀로는 불행한 홀로도 있고, 행복한 홀로도 있다. 불행한 홀로는 그리스도가 없는 홀로이다. 그럼 긍정적인 홀로는 무엇인가? 나는 외롭지만 그리스도와는 떠나 있지 않은 홀로. 이렇게 두 개념으로 좀 보는 것이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


  1. 2019’2기 07과 가족 연합의 비결

  2. 2019’2기 06과 왕의 연가

  3. 2019’2기 05과 가족을 위한 조언

  4. 2019’2기 04과 혼자일 때

  5. 2019’2기 03과 변화에 대비함

  6. 2019’2기 01과 생애의 리듬

  7. 2019’1기 13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8. 2019’1기 12과 바벨론에 임한 심판

  9. 2019’1기 11과 일곱 재앙

  10. 2019’1기 10과 하나님의 영원한 복음

  11. 2019’1기 09과 사탄과 그의 동맹군

  12. 2019’1기 08과 패배한 원수 사탄

  13. 2019’1기 07과 일곱 나팔

  14. 2019’1기 05과 일곱 인

  15. 2019’1기 04과 어린 양이 합당하시도다

  16. 2019’1기 03과 일곱 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기별

  17. 2019’1기 02과 촛대 사이에서

  18. 2018’4기 13과 연합의 최종적인 회복

  19. 2018’4기 12과 교회의 조직과 연합

  20. 2018’4기 11과 예배를 통한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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